10월의 시 모음 이해인 기도, 가을

10월의 시 모음 이해인 기도, 가을

10월은 일 년 중에서도 가장 시적인 달입니다. 여름의 뜨거움이 잦아들고, 겨울의 냉기가 서서히 스며드는 그 사이에서 인간의 감정은 가장 풍성하게 피어납니다. 산과 들이 물들고 하늘이 높아지며, 마음마저 투명해지는 계절. 이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시를 떠올립니다. ‘10월의 시 모음 ’은 단순한 감상문을 넘어, 우리가 지금 어디쯤 서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영혼의 거울입니다.

이번 10월의 시 모음 글에서는 이해인 수녀의 따뜻한 기도에서부터 박노해의 철학적 성찰, 류시화의 존재론적 사유에 이르기까지, 가을의 결을 섬세하게 담은 시들을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이해인 수녀의 기도 - 향기로운 사람의 계절

10월의 기도

10월의 기도 - 이해인

언제나 향기로운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좋은 말과 행동으로 본보기가 되는
사람 냄새가 나는 향기를 지니게 하소서

타인에게 마음의 집이 되는 말로
상처를 주지 않게 하소서
상처를 받았다기보다 상처를 주지 않았나
먼저 생각하게 하소서

늘 변함없는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살아가며 고통이 따르지만
변함없는 마음으로 한결같은 사람으로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게 하시고
마음에 욕심을 품으며 살게 하지 마시고
비워두는 마음 문을 활짝 열게 하시고
남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게 하소서

무슨 일이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아픔이 따르는 삶이라도 그 안에 좋은 것만 생각하게 하시고
건강 주시어 나보다 남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주소서

10월에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더욱 넓은 마음으로 서로 도와가며 살게 하시고
조금 넉넉한 인심으로 주위를 돌아 볼 수 있는
여유 있는 마음 주소서

이해인 수녀의 시는 신앙의 언어로 쓰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 철학적 시이기도 합니다. ‘향기로운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라는 첫 구절은 마치 아침기도처럼 우리의 마음을 정화합니다. 시는 외적인 가을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기보다 내면의 단풍을 물들이는 과정에 집중합니다. 이 시의 핵심은 ‘비워냄’과 ‘경청’에 있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남의 말을 듣는다는 행위는 곧 사랑과 성찰의 시작임을 수녀는 말하고 있습니다.

10월의 엽서

10월의 엽서 – 이해인

사랑한다는 말 대신
잘 익은 석류를 쪼개 드릴게요

좋아한다는 말 대신
탄탄한 단감 하나 드리고
기도한다는 말 대신
탱자의 향기를 드릴게요

푸른 하늘이 담겨서
더욱 투명해진 내 마음
붉은 단풍에 물들어
더욱 따뜻해진 내 마음

우표 없이 부칠 테니
알아서 가져가주실래요?

서먹했던 이들끼리도
정다운 벗이 될 것만 같은

눈부시게 고운 10월 어느 날

이 시는 ‘엽서’라는 형식에 사랑과 기도를 담았습니다. 직접적인 고백 대신 자연의 사물로 마음을 전하는 방식은 이해인 특유의 상징적 언어를 보여줍니다. 말보다 ‘향기’로, 문장보다 ‘색감’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절제의 미학이 돋보입니다.

시인 프로필 - 이해인 수녀

• 본명: 이해인(李海仁)
• 출생: 1945년 강원도 양구
• 직업: 수녀, 시인
• 등단: 197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 대표작: 『민들레의 영토』,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 시 세계: 따뜻한 신앙, 겸손, 인간애를 중심으로 한 내면의 치유 시

류시화와 이문재 - 존재의 가벼움과 깊이

시월의 시 (류시화)

시월의 시 – 류시화

그리고는
가을 나비가 날아왔다
아, 그렇게도 빨리

기억하는가
시월의 짧은 눈짓을

서리들이 점령한 이곳은
이제 더 이상 태양의
영토가 아니다

곤충들은 딱딱한 집을 짓고
흙 가까이
나는 몸을 굽힌다

내 혼은 더욱 가벼워져서
몸을 거의 누르지도 않게 되리라

류시화의 시는 늘 ‘존재의 무게’와 ‘영혼의 자유’를 동시에 다룹니다. ‘혼이 가벼워진다’는 구절은 삶의 본질을 향한 환원입니다. 화려했던 여름을 지나 이제는 ‘가벼워짐’을 통해 존재의 본모습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가을의 허무함이 아니라 그 속의 평화를 전하는 시입니다.

10월 (이문재)

10월 – 이문재

투명해지려면 노랗게 타올라야 한다
은행나무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은행잎을 떨어뜨린다

중력이 툭, 툭, 은행잎을 따 간다
노랗게 물든 채 걸음을 멈춘 바람아
가볍고 느린 추락에게 길을 내준다

아직도 푸른 것들은 그 속이 시린 시월
내 몸 안에서 무성했던 상처도 저렇게
노랗게 말랐으리, 뿌리의 반대편으로
타올라, 타오름의 정점에서
중력에 졌으리라,
서슴없이 가벼워졌으나
결코 가볍지 않는 10월

이문재 시인의 시는 자연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투사합니다. ‘타올라야 투명해진다’는 역설적 표현은 삶의 고통이 결국 인간을 정화시킨다는 깨달음을 담고 있습니다. 가을의 은행잎이 중력에 져 떨어지듯, 인간도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순간에야 진정한 자유에 도달한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시인 프로필 - 류시화, 이문재

• 류시화: 1959년 충북 제천 출생. 대표작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인간 내면의 영적 탐구를 시로 표현함.
• 이문재: 1959년 경기 시흥 출생. 『지금 여기가 맨 앞』 등으로 자연과 현실을 잇는 명상적 언어를 구사.

김정섭과 박노해 - 꽃과 시간의 철학

10월의 코스모스 (김정섭)

10월의 코스모스 – 김정섭

꽃이 지고 있습니다
헤적이다가 얼룩진
지난날들이
꽃으로 피었다가
지고 있습니다

진홍빛 사연들이
연분홍빛 체색들이
하얀 화선지 위에
한 폭의 수채화로
그려졌던 날들이
가을 언저리에서
애써 꽃으로 피었다가
깊어가는
내 가을 비밀노트에서
아프게 지고 있습니다

코스모스는 가을의 대표 꽃이자 인간의 추억을 상징합니다. 김정섭의 시는 ‘지는 꽃’에 초점을 맞추며, 삶의 무상함과 그 속의 아름다움을 포착합니다. ‘비밀노트’라는 표현은 인생의 일기이자 기억의 상징입니다. 코스모스의 시들음은 곧 인간의 성숙과 동일한 궤를 걷습니다.

가을은 짧아서 (박노해)

가을은 짧아서 – 박노해

가을은 짧아서
할 일이 많아서

해는 줄어들고
별은 길어져서

인생의 가을은
시간이 귀해서

아 내게 시간이 더 있다면
너에게 더 짧은 편지를 썼을 텐데

더 적게 말하고
더 깊이 만날 수 있을 텐데

더 적게 가지고
더 많이 살아갈 수 있을 텐데

가을은 짧아서
인생은 짧아서

귀한 것 시간이어서
짧은 가을 생을 길게 살기로 해서

물들어 가는 가을 나무들처럼
더 많이 비워내고
더 깊이 성숙하고

내 인생의 결정적인 단 하나를 품고
영원의 시간을 걸어가는
짧은 가을날의 긴 마음 하나

박노해 시인의 시는 철학적이면서도 따뜻합니다. 그는 ‘짧음’을 부정적 한계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짧은 생 안에서 진짜 의미를 찾는 시간을 소중히 여깁니다. “결정적인 단 하나를 품고”라는 구절은 인간 존재가 결국 ‘본질의 탐색’에 귀결된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시인 프로필 - 김정섭, 박노해

• 김정섭: 자연의 감정을 세밀한 시각 이미지로 구현하는 시인.
• 박노해(본명 박기평, 1957년 전남 함평 출생): 노동운동가이자 시인. 『노동의 새벽』으로 시대의 고통을 노래하며, 이후에는 명상적 인류애로 시의 폭을 확장.

목필균과 김사랑 - 시월의 안부와 연정

10월의 시 (목필균)

10월의 시 – 목필균

깊은 밤 별빛에
안테나를 대어놓고
편지를 씁니다

지금, 바람결에 날아드는
풀벌레 소리가 들리느냐고

온종일 마음을 떠나지 못하는
까닭 모를 서글품이 서성거리던 하루가
너무 길었다가

회색 도시를 맴돌며
스스로 묶인 발목을 어쩌지 못해
마른 바람속에서 서 있는 것이
얼마나 고독한지 아느냐고

알아주지 않을 엄살 섞어가며
한 줄, 한 줄 편지를 씁니다

보내는 사람도
받을 사람도
누구라도 반가울 시월을 위해
내 먼저 안부를 전합니다

목필균의 시는 외로운 도시의 풍경과 내면의 쓸쓸함을 교차시킵니다. ‘별빛에 안테나를 대어놓고’라는 비유는 현대인의 고독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대목입니다. 시는 누군가에게 보내지지 않은 편지처럼, 다가갈 수 없는 마음의 거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10월의 시 (김사랑)

10월의 시 – 김사랑

살다 보니 10월이고
길가에 코스모스 피고 바람에 흔들릴 때면
소녀처럼 웃고픈 10월이다

꽃을 따서 하늘에 날리고
그 누가 내 마음을 알아줄까?

아직도 그리는 이내 사랑은
고추잠자리 알아줄까?

중연의 달은 뜨고
기러기 울어가는 밤이면
내 사랑에 단풍이 들고
내 인생에도 10월이야

내 인생에 억새꽃 피면
흐르는 무정한 세월 속에
잊지 못한 추에이야

김사랑의 시는 향수와 연정을 품은 순정시입니다. 단풍과 억새, 기러기 같은 소재는 정서적 서정미를 완성합니다. 10월의 풍경을 배경으로 사랑의 그리움을 담담히 풀어낸 시로, 한국적 정서가 깊이 묻어납니다.

시인 프로필 - 목필균, 김사랑

• 목필균: 서정성과 현실 감각을 결합한 시인 겸 작사가.
• 김사랑: 감성적 어휘와 순수한 정서를 바탕으로 사랑과 계절을 노래하는 시인.

윤보영과 오보영(미송) - 일상 속의 철학과 순환의 미학

10월 아침에 (윤보영)

10월 아침에 – 윤보영

10월이 되었습니다
10월을
기다렸던 사람도 있을 테고
지독한 외로움 때문에, 나처럼
반갑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당당하게 10월을 맞이하고
10월의 주인이 되기로 했습니다

매년 그러했듯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10월
지금부터 내 10월을
나를 위한 10월로 만들겠습니다

모임에도 자주 나가고
낙엽 보이는 창가에 앉아
부드러운 커피도 마시면서
내 안에 찾아온 10월을
즐기면서 보내겠습니다

생각 한 번 바꾸었는데
쓸쓸한 표정 짓던 10월이
꽃다발 같은 미소로 다가섭니다

"그래, 10월!
우리 한 번 잘해보자!"
꽃밭 같은 마음 내밀고
10월을 맞이합니다.

사랑합니다.

윤보영의 시는 짧은 글 속에서 마음을 따뜻하게 데웁니다. 그는 ‘외로움’을 피하지 않고, 그것을 인정하며 ‘내 10월을 나를 위한 10월로’ 만들겠다고 말합니다. 이 시는 자기 위로와 회복의 메시지를 담은 현대적 시월의 선언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10월 잎새 (오보영)

10월 잎새 – 오보영(미송)

낙엽 되어
떨어진다고

너무 서글퍼 하지 말거라

그간 너는
널 맺게 해준 나무를 위해서
나무 있게 해준 숲을 위해서

네가 너로서
지켜야 할 본분
하여야 할 도리를

할 만큼 하며 살아왔단다

지난 세월
강풍아 불어와도
폭우가 쏟아져 내려도

굴하지 않고

당당히 할 바를 다하였으니

이제는 편안한 맘으로
귀한 소명 감당하거라

널 필요로 하는
땅에게로 가서
기름진 밑거름이 되어 주거라

오보영(미송) 시인은 자연의 순환을 통해 인간의 생을 비유합니다. 낙엽의 ‘소명’은 생의 완성이며, 그 끝은 새로운 시작임을 상징합니다. 이 시는 죽음과 소멸을 두려움이 아닌 ‘안식’으로 해석하는 성숙한 관점을 보여줍니다.

시인 프로필 - 윤보영, 오보영(未松)

• 윤보영: SNS에서 ‘사랑의 시인’으로 알려진 현대 감성시의 대표 작가.
• 오보영(미송): 한시적 어법과 현대어를 결합해 자연과 생명윤리를 시로 표현.

결론 - 10월의 시가 우리에게 남기는 것

10월의 시들은 모두 ‘가을의 빛깔’보다 ‘삶의 온도’를 이야기합니다. 이해인의 기도처럼 향기로운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 박노해의 결심처럼 본질을 향한 여정, 류시화의 가벼움 속의 평화, 김정섭의 지는 꽃의 미학, 윤보영의 일상적 따뜻함까지—이 모든 시들은 결국 우리에게 ‘살아 있음의 기쁨’을 일깨워 줍니다. 시는 계절을 기록하는 언어이자, 마음의 온도를 맞추는 거울입니다.

이번 10월, 단풍이 물드는 하늘 아래에서 시 한 편을 읽는 여유를 가지신다면, 그 자체가 가장 깊은 ‘기도’가 될 것입니다.